약 15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수업 시간에 물건을 떨어뜨리는 게 아주 큰 잘못인 줄 알았습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수업 도중에 아이들이 무언가를 실수로 떨어뜨리면 크게 화내시며 때렸습니다.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을 때도 있었고, 선생님께서 기분이 안 좋으실땐 뺨을 맞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게 큰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안건 5학년이 되어서였습니다. 수업 시간에 필통을 떨어뜨렸을 때, '아 나 한 대 맞겠구나' 생각했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은 함께 물건을 주워주시면서 별다른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그때 이게 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학교를 다니면서 많이 맞았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폭력 속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맞는 게 없어진 것은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난 중학교 때부터였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뿐만 아니라, 성별·종교·나이·사회적 신분·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학생의 휴식할 권리, 자치활동의 권리 등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학교를 다닐 권리를 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것은 충청남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 추락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교에서 학생인권이 지나치게 우선시되면서 교권은 땅에 떨어졌다’는 억지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교권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선생님들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교권침해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는 주장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교육부와 일부 교육감, 한국교총과 같은 단체들입니다.
이들의 주장처럼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침해의 주범이라면,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대구, 대전, 경북 지역은 교권 침해 사례가 없거나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적어야 합니다. 하지만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의 교권침해 사례가 타 지역에 비해 양적으로 적다고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에 있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있어도 교권침해 사건 수가 줄기도 하는 등 둘 간의 상관관계는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아울러 한국교총은 학생인권조례가 없어도 학생 보호는 헌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해당 법률에 학생인권과 관련된 조항이 있긴 하나, 각 법의 목적 자체가 학생인권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들 법령을 근거로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기에는 다소 추상적인 규범이라는 문제가 있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학생에 대한 체벌 금지가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기존에 보장하던 여러 권리들은 근거 법령을 잃게 됩니다.
기본권은 어떤 규범으로 보호되는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기본권이 있는지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학생인권조례처럼 기본권이 구체화된 법이 없으면 학생들이 ‘나는 어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처한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벌써 전체 교직원에게 반별로 두발 및 복장 규제, 소지품 검사 등 ‘용의검사’를 실시하라는 문서를 발송했다고 합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적이 없는 지역은 꽤 최근까지도 학생 체벌이나 학생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집단은 학생인권조례가 문제라며 교권 추락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한 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 쪽은 내려가는 ‘제로섬’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둘 모두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교권이 침해당할 때 교장, 학교, 교육감, 교육청 그 누구도 책임지고 교원을 보호하지 않는 체계 자체부터 고쳐야 합니다. 교원이 과도한 행정업무에서 벗어나 본연의 업무인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 인력을 충원해야 할 것이고,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부터 조직 내에서 보호받으며 법적인 문제가 발생해도 변호사의 조력을 쉽게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시한 채 학생인권을 나쁜 인권이라 규정하고, 학생인권조례를 악마화하려는 시도는 저지되어야 합니다. 그 어떤 집단도 잘못을 했거나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폐지하지 않습니다. 이번 학생인권조례 폐지의 움직임은 그저 또 다른 형태의 아동 혐오에 불과합니다.
사단법인 아동안전위원회
이사 김주환
#학생인권조례 #아동안전위원회 #체벌 #청소년 #학교 #교사
약 15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수업 시간에 물건을 떨어뜨리는 게 아주 큰 잘못인 줄 알았습니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수업 도중에 아이들이 무언가를 실수로 떨어뜨리면 크게 화내시며 때렸습니다.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을 때도 있었고, 선생님께서 기분이 안 좋으실땐 뺨을 맞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게 큰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안건 5학년이 되어서였습니다. 수업 시간에 필통을 떨어뜨렸을 때, '아 나 한 대 맞겠구나' 생각했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은 함께 물건을 주워주시면서 별다른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그때 이게 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학교를 다니면서 많이 맞았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폭력 속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맞는 게 없어진 것은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난 중학교 때부터였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뿐만 아니라, 성별·종교·나이·사회적 신분·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학생의 휴식할 권리, 자치활동의 권리 등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학교를 다닐 권리를 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 26일, 서울시의회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것은 충청남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권 추락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교에서 학생인권이 지나치게 우선시되면서 교권은 땅에 떨어졌다’는 억지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교권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온 선생님들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교권침해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는 주장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교육부와 일부 교육감, 한국교총과 같은 단체들입니다.
이들의 주장처럼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침해의 주범이라면,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대구, 대전, 경북 지역은 교권 침해 사례가 없거나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적어야 합니다. 하지만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의 교권침해 사례가 타 지역에 비해 양적으로 적다고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에 있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있어도 교권침해 사건 수가 줄기도 하는 등 둘 간의 상관관계는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아울러 한국교총은 학생인권조례가 없어도 학생 보호는 헌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해당 법률에 학생인권과 관련된 조항이 있긴 하나, 각 법의 목적 자체가 학생인권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들 법령을 근거로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기에는 다소 추상적인 규범이라는 문제가 있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학생에 대한 체벌 금지가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기존에 보장하던 여러 권리들은 근거 법령을 잃게 됩니다.
기본권은 어떤 규범으로 보호되는지도 중요하지만, 내가 어떤 기본권이 있는지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학생인권조례처럼 기본권이 구체화된 법이 없으면 학생들이 ‘나는 어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위기에 처한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벌써 전체 교직원에게 반별로 두발 및 복장 규제, 소지품 검사 등 ‘용의검사’를 실시하라는 문서를 발송했다고 합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적이 없는 지역은 꽤 최근까지도 학생 체벌이나 학생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했다는 언론 보도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집단은 학생인권조례가 문제라며 교권 추락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한 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 쪽은 내려가는 ‘제로섬’ 관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둘 모두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교권이 침해당할 때 교장, 학교, 교육감, 교육청 그 누구도 책임지고 교원을 보호하지 않는 체계 자체부터 고쳐야 합니다. 교원이 과도한 행정업무에서 벗어나 본연의 업무인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 인력을 충원해야 할 것이고,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부터 조직 내에서 보호받으며 법적인 문제가 발생해도 변호사의 조력을 쉽게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시한 채 학생인권을 나쁜 인권이라 규정하고, 학생인권조례를 악마화하려는 시도는 저지되어야 합니다. 그 어떤 집단도 잘못을 했거나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을 폐지하지 않습니다. 이번 학생인권조례 폐지의 움직임은 그저 또 다른 형태의 아동 혐오에 불과합니다.
사단법인 아동안전위원회
이사 김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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